/AI Chasm Catalyst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기게스의 반지는 권력이 은폐될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도덕을 버리는지 보여주는 장치였다. 반지를 낀 순간, 기게스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는 곧바로 살인과 권력 찬탈에 나섰다.
인간은 감시받지 않을 때 본성이 드러난다는 플라톤의 경고였다.
오늘날 한국의 LLM(거대언어모델) 기업들은 기게스의 반지를 낀 채 ‘투명하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기술은 공개하지 않고,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은 채, 언론을 향해 성능 평가에서 몇 등을 했다는 숫자 놀음만 반복한다.
정작 국민과 연구자, 개발자는 그 기술을 체험할 수도, 검증할 수도 없다. 투명성 없는 자랑은 기만일 뿐이다.
◆중국도 공개하는데, 한국은 왜 숨기는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 바이다(Baidu), 알리바바, 화웨이 같은 기업들이 LLM을 오픈소스로 풀고, 개발자 누구나 검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기술이 국가 통제 아래 있더라도 최소한 ‘투명성’이라는 신뢰 자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국민 세금으로 연구개발을 지원받는 기업들이 결과물을 철저히 숨긴다. 외부 검증도 없이 자기들끼리 만든 지표로 성과를 포장하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쓴다.
사용자는 “성능이 뛰어나다”는 말만 들을 뿐, 실제로 그 기술을 쓸 기회조차 없다. 이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홍보전이지, 혁신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은 결국 부패한다
기게스의 반지를 낀 권력자는 언젠가 반드시 타락한다. 한국의 LLM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오픈소스 공개와 서비스 제공을 회피한 채 폐쇄적 권력에 안주한다면, 결국 그 기술은 내부 자산으로만 소비되고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한다.
기술 주권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국민에게 등 돌린 채 독점 권력만 키워가는 셈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으로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 5개 컨소시엄만 남는 순간, 진짜 재앙이 시작된다
현재 정부 사업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최종 후보가 대기업 중심의 5개 컨소시엄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첫째, 이미 폐쇄적인 LLM 개발 관행이 ‘국가 인증’을 받은 채 제도화된다.
둘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사실상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셋째, 국민 세금으로 개발된 기술이 일부 대기업의 독점 자산으로 고착화된다.
그 결과는 뻔하다. 한국의 AI 생태계는 활력을 잃고, 투명성 없는 독점이 강화되며, 진짜 혁신은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결론: 기게스의 환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게스의 반지는 인간의 도덕을 시험했다. 한국의 LLM 기업들은 지금 같은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그러나 현실은 낙제에 가깝다.
서비스도 없는 성과 자랑, 오픈소스 없는 독점적 개발, 그리고 대기업 중심의 구조 고착화는 기술 패권이 아니라 기술 파멸로 가는 길이다.
대기업 5개 컨소시엄으로 좁혀지는 순간, 한국은 AI 주권을 잃고 스스로 재앙을 자초할 것이다.
기술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공개하고 함께 쓰는 순간 힘을 갖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과 과시가 아니라 투명성과 개방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LLM은 기게스의 반지처럼 우리 사회를 결국 무너뜨리는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