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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코앞두고 투자금 유치, 대표의 해외 도주로 투자사 발칵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AI) 점자 번역 기술로 주목받던 스타트업 센시(SENSEE)의 서모 대표가 회사 자금을 횡령한 뒤 해외로 도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투자사들이 발칵 떨고 있다.
수백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기업공개(IPO)까지 준비하며 유망 기업으로 평가받던 센시의 갑작스러운 경영 악화는 국내 벤처 생태계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광복절 연휴 시작과 함께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센시 서모 대표는 회사의 투자금 일부를 유용한 뒤 해외로 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센시는 지난해 시리즈B 투자 유치를 통해 약 3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으며, 한국투자증권을 주관사로 내년 상장을 목표로 IPO 준비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센시 대표가 회사 자금을 빼돌려 해외로 나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현재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 중"이라고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투자사들 '사후 약방문', 실사 부실 논란도
이번 사태를 가장 당황스럽게 맞이한 이들은 센시에 투자한 벤처캐피털(VC)들이다. SK텔레콤, 카카오, 대성창업투자, 카이스트창업투자, 큐더스벤처스 등 국내 유수 기관과 ATP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증권 등이 투자에 참여했다. 이들은 뒤늦게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센시 측에 실사 자료를 요청하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표가 해외로 나간 상태에서 자금 회수는 요원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투자사들의 관리 부실 논란이다.
상장 직전 단계에 있는 기업의 대표가 횡령을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투자사들의 사후 관리 및 실사 과정에 구멍이 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펀드 출자자(LP)들이 투자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투자 전 경영진 검증, 사후 관리 시스템 절실"
이번 사태는 성장 가능성만 보고 투자에 나서는 국내 VC들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벤처투자 전문가는 "기술력과 시장성만 평가할 뿐, 자금을 관리할 경영진의 도덕성과 내부 통제 시스템에 대한 검증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대표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스타트업의 경우, 이를 견제할 장치 마련이 투자 후 관리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학계에서도 유사한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 교수는 "투자 유치 후 기업의 자금 흐름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투자사가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벤처 생태계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사건"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과거에도 일부 스타트업들이 투자금을 유용하거나 허위 실적을 발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눈부신 성장 뒤에 숨은 의혹, 실적은 '거품'이었나?
사실 센시는 투자자들에게 그 어느 기업보다 매력적인 성장 스토리를 제시했다.
센시는 AI 기술을 활용해 언어, 문자, 수식, 표 등을 점자로 빠르고 저렴하게 변환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기존 6개월에서 10개월이 걸리던 대학 수학 교재의 점자 변환 작업을 단 하루 만에 끝내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시장에서 점자책 한 권이 150달러에서 200달러에 팔리는 것을 센시는 자체 기술로 40달러까지 낮추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센시는 지난해 매출 300억 원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108%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전년 매출이 144억 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가파른 상승세였다.
하지만 대표의 갑작스러운 해외 도주는 그동안 발표됐던 '눈부신 성장'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심을 키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라며 "회사가 발표한 실적이나 성장 스토리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투자사들은 향후 법적 절차를 통해 자금 회수와 함께 회사의 실제 경영 상태를 파악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