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hasm Catalyst

세계적 기업가이자 기부자로 알려진 빌 게이츠가 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그의 행보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직면한 세 가지 과제—공공 부문의 소프트웨어 표준, 차세대 원전 협력, 그리고 AI 시대의 불평등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개발자의 우상에서 ‘악역’으로

빌 게이츠는 오랫동안 전 세계 개발자들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다. 한국에서도 신진 개발자가 등장할 때면 흔히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표현이 따라붙곤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글과컴퓨터(한컴)를 인수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국민적 반감은 마이크로소프트를 하루아침에 ‘악덕 기업’으로 몰았고, ‘한글 소프트웨어 지켜내기’ 운동이 일어났다. 실제로는 매각을 먼저 제안한 쪽이 한컴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여론의 거센 반발에 결국 무산됐다.

이 사건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공공기관 한컴 표준’ 정책의 기원이 됐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국산 소프트웨어 수호전 같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내 IT생태계의 국제적 호환성을 떨어뜨리는 족쇄로 작용해 왔다.

◆ 혁신을 가로막는 ‘공공 표준’의 그림자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오피스·워크스페이스 제품군에 가장 먼저 생성형 AI 기능을 탑재하며 ‘AI 오피스’ 시대를 열고 있다. 반면 공공 부문은 여전히 한컴에 묶여 있다. 관급 시장에 참여하는 민간기업들까지 한컴 호환성을 맞춰야 하는 탓에 글로벌 생산성 툴과의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해외 파트너와 문서를 주고받을 때 지방정부에서 한컴 문서를 보내 혼선이 빚어진다는 사례는 업계에선 흔한 얘기다.

이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문제가 아니라 혁신 역량의 차이를 구조화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서 비판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공공 부문에서 굳이 최첨단 AI 오피스가 필요한가”라는 반론도 있지만, 글로벌 협력에서 발목이 잡히는 현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 게이츠 재단과 한국의 에너지 지형

흥미로운 점은 이번 방한 일정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라 게이츠 재단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그는 원자력·보건 분야에서 꾸준히 투자와 협력을 이어왔고,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과 접점을 넓혀왔다. 한국 정부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는 전략을 밝힌 상황에서, 게이츠 재단과 한수원·두산에너빌리티 같은 기업의 협력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

그러나 원전은 한국에서 뿌리 깊은 정치적 논란거리다. 에너지 전문가 김상훈 교수(가칭)는 “SMR이 차세대 청정에너지로 부상하고 있지만, 정치적 프레임을 넘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게이츠의 방한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정책적 균열을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 기부와 기본소득에 담긴 메시지

빌 게이츠는 세계적인 기부자이자 기본소득 지지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상속세 완화에 반대하며, AI와 자동화가 불러올 고용 충격에 대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사회학자 이은영 박사(가칭)는 “게이츠가 강조하는 기본소득 논의는 로봇과 AI가 주도할 미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번 한국 방문에서 그는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기부왕’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AI 시대 불평등 심화에 대한 경고와, 국제적 차원의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기부 미담이 아니라 구조적 대안을 제시하는 행보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도 그의 발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 남은 질문

결국 빌 게이츠의 방한은 단순히 세계적 거물이 한국을 찾는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여전히 글로벌 기술·에너지 담론의 시험대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공공 부문 소프트웨어 표준 논란에서부터 차세대 원전, 기본소득과 AI 사회계약까지, 게이츠가 던질 메시지는 한국 사회의 미래 좌표와도 맞닿아 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두꺼운 책들이 놓여 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책 속의 문장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AI와 원전, 그리고 불평등 시대에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