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hasm Catalyst
국내 디지털 전환 과제의 병목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맥락을 아는 사람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현업의 AI 리터러시와 도메인 중심 백엔드 시니어의 개입이 요구사항 분석부터 화면·시스템 설계까지 끌고 가야 혁신형 AI 서비스가 탄생한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
◆ 사례로 본 병목의 실체
대형 보험사의 퇴직연금 고도화 과정에서 외주 기획은 도메인·데이터 이해 부족으로 장기 표류했다. 반면 업무시스템 책임 개발자였던 백엔드 시니어가 펀드·내부 API를 엮어 초기 화면·흐름을 제시하자 현업 의사결정이 붙고 개발이 전진했다. 요구사항 분석은 전통적 기획과 다르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아, 도메인을 장악한 백엔드가 초안을 잡을 때 프로젝트가 움직인다는 교훈이 남았다.
◆ 한국형 SI 구조와 규제의 그늘
국내 SW 산업은 원사업자–하수급–재하수급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이 일반화돼 있다. 법령은 전체 금액의 50% 초과 하도급을 제한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하도급 승인·관리의 실효성 논란이 되풀이된다. 2020년 이후 공공 SW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이 부분적으로 완화되며 시장 지형도 바뀌는 중이다. 다만 구조적 하도급 의존이 남아 인력 양성과 상위 공정 경험 축적을 막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 일본의 경고가 던지는 시사점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8년 DX 레포트에서 레거시 의존과 인력 부족이 초래할 ‘2025년의 절벽’을 경고했다. 2025년 이후에도 레거시 현대화와 거버넌스 개편 과제가 공식 보고서에서 반복 확인되며, 내부 IT 인력 부족·다층 외주 구조가 DX 성과를 제약한다는 분석이 학술·정책 자료로 축적돼 있다. 우리 역시 레거시·인력·거버넌스의 삼중 과제를 선제적으로 풀어야 한다.
◆ 왜 ‘현업의 AI 리터러시’인가
OECD는 AI가 생산성과 작업 품질을 높이지만, 효과를 내려면 업무 재설계와 기술·데이터 활용 역량이 노동 현장 전반에 확산돼야 한다고 본다. MIT Sloan과 맥킨지 역시 실험을 넘어 운영에 녹일 때는 프로세스 재설계, 역할 분해, 재교육이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요약하면 ‘모델’보다 ‘업무를 아는 사람’이 먼저다.
◆ 인력난과 보상 격차의 현실
국내 AI·SW 인력 부족은 장기화 조짐이다. 업계 조사에선 AI 개발자 부족률이 과반을 넘는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편 해외 빅테크는 수억~수백억 원대 보상으로 상위 인재를 흡수하고 있다. 메타는 연구·ML 엔지니어에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 수준의 총보상을 제시하고, 경쟁사들도 수준을 맞춘다. 국내 기업이 외주 다단계 구조에 머무르면 인재 유치·유지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 한국형 돌파구,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나
첫째, 현업 우선 AI 리터러시. 모든 신규·개편 과제의 킥오프에 현업 담당자와 백엔드 시니어를 고정 투입하고, 도메인·데이터·AI 사용 시나리오 교육을 단기 부트캠프로 상시화한다. 직무별 생성형 AI 사용 가이드와 승인 절차를 표준화해 ‘그때그때 다른’ 도입을 막는다.
둘째, 요구사항-설계의 내재화. 초안 기획을 외주에 전가하지 말고, 내부 제품팀이 서비스 흐름·데이터 계약·품질 지표까지 1차 산출물을 책임지는 체계를 정례화한다.
셋째, 백엔드 시니어의 역할 확장. 도메인 중심 백엔드가 요구사항 분석·API 계약·화면 흐름까지 아우르는 ‘테크 PM’으로 역할을 넓히고, 등급·보상 체계를 상향 조정한다. 국내 SW기술자 평균임금 공표 자료를 기준으로 시니어 급여 밴드를 재설계해 채용·유지 경쟁력을 높인다.
넷째, 다단계 하도급 디에스케일. 중간도급 축소와 실명형 하도급 승인·감사를 강화해 실질적인 1.5단계 내외 구조로 수렴시킨다. 공공·금융 과제는 50% 초과 하도급 제한의 준수 여부를 발주기관 PMO에서 상시 모니터링한다.
다섯째, 레거시 현대화 로드맵. 일본의 디지털 클리프를 타산지석 삼아, 코어 시스템을 도메인별 서비스·데이터 제품으로 분해하고 이벤트 기반·API 퍼스트로 재구조화한다. 단계별로 AI 에이전트가 개입할 수 있는 운영 포인트를 지정해 ‘모델부터’가 아니라 ‘업무부터’ 전환한다.
여섯째, 수직형 AI로 가치화. 범용 도구 배치로는 효과가 분산된다. 프로세스 깊숙이 통합되는 수직형·도메인형 AI를 우선 도입하고, KPI는 처리시간 단축·오류율·현금흐름 개선 등 운영 지표로 잡아야 성과가 보인다.
◆ 정책·거버넌스 제언
발주기관과 금융권은 공공·규제 과제의 착수 요건에 ‘내부 초안 기획서’와 ‘현업 AI 리터러시 이수’ 확인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하도급 관리 가이드를 계약·감리와 연계해 실효성을 높이고, 내부에 최고 AI 책임자 체계와 데이터 제품 오너십을 명문화해야 한다. 교육은 일회성이 아니라 직무에 녹인 상시제여야 한다.
◆ 결론
혁신형 AI 서비스는 외주 계약서에서 나오지 않는다. 도메인을 아는 현업과 설계·백엔드를 겸비한 시니어가 같은 책상에 앉아 초안을 만들 때 비로소 나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모델이 아니라, 더 똑똑한 일을 설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구조다.
전문가 코멘트
국내 AI·SW 정책 연구자는 “조직의 AI 성숙도는 데이터·아키텍처·역할 재설계가 함께 움직일 때 올라간다. 현업을 교육하고 백엔드 시니어를 ‘테크 PM’으로 세우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관련 국제 자료도 업무 재설계와 현장 역량 확산을 핵심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