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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ㅣ 로이터 홈페이지


알바니아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가상 장관을 내각에 임명하며 부패척결을 위한 파격적 실험에 나섰다. 이는 정부 의사결정에 AI를 본격 활용한 전례 없는 시도로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 권한을 가진 '장관'이 탄생했다. 알바니아가 인공지능(AI) 가상 장관 '디엘라'를 세계 최초로 내각에 임명하며 부패척결을 위한 전대미문의 실험에 나섰다.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 아바타 모습의 디엘라는 단순한 자문역이 아닌 공공조달의 핵심 결정권을 갖는 실질적 장관이다. "100% 부패 없는, 100% 추적 가능한 절차"를 내건 알바니아의 파격적 시도가 AI 거버넌스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출처:알바니아 AI장관 디엘라 SNS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는 지난 11일 사회당 전당대회에서 AI 가상 장관 '디엘라'를 공식 소개하며 "공공조달 분야 부패를 완전히 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디엘라는 올해 1월부터 전자정부 포털에서 시민 서비스를 담당해온 AI 아바타로, 이번에 장관급으로 승격된 것이다.

◆ 조달 결정권 AI에 단계적 이관

라마 총리는 "디엘라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AI로 창조된 최초의 내각 구성원"이라며 "공공 입찰 결정을 부처에서 떼어내 단계적으로 AI에 이관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엘라는 앞으로 입찰 평가와 낙찰 결정 등 조달 핵심 절차를 담당하게 된다.

알바니아 정부는 "100% 부패 없는, 100% 추적 가능한 절차"를 목표로 내걸었다. 사람의 재량을 최소화하고 규칙 기반·로그 기반 결정 시스템을 구축해 투명성을 극대화한다는 계산이다. 전통적인 알바니아 의상을 입은 여성 모습으로 구현된 디엘라는 지금까지 3만6600건의 디지털 문서 발급과 1000여 건의 서비스를 제공한 실적을 갖고 있다.

◆ EU 가입 위한 부패척결 절박함

이번 AI 장관 임명 배경에는 알바니아의 뿌리 깊은 조달 부패 문제가 있다. 알바니아는 2024년 투명성국제 부패인식지수에서 180개국 중 80위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98위(37점)에서 18계단 상승한 42점으로 상당한 개선을 보였지만, 여전히 EU 가입 기준에는 미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공공조달 분야의 부패는 EU 가입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2023년 레프테르 코카 전 환경부 장관이 370만 유로 뇌물 수수로 6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는 등 조달 관련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라마 총리는 2030년 EU 가입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부패 척결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알바니아의 특별반부패검찰청과 전문법원이 전직 장관과 국회의원, 시장들을 기소하며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점도 이번 혁신적 시도의 배경이 됐다.

◆ 법적 지위와 감독체계 논란

하지만 구체적인 인간 감독 방안과 안전장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가즈멘드 바르디 민주당 원내대표는 디엘라의 장관 지위를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총리의 광대짓을 알바니아 국가의 법적 행위로 만들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

AI 결정에 대한 불복 절차, 법적 책임 소재, 감사 가능성 등 제도적 보완책도 미비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AI가 조작될 위험성과 책임 소재 불분명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의회 내각 인준 표결에서 디엘라 직책을 별도 표결할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 세계 최초 실질 행정권한 AI 사례

국제적으로 정부 AI 활용 사례는 늘고 있지만, 실질적 행정 권한을 부여한 경우는 디엘라가 처음이다. 루마니아는 2023년 3월 AI 보좌관 'ION'을 도입했지만 국민 여론 수집과 정책 자문 역할에 그쳤다. 우크라이나도 2024년 5월 외교부 AI 대변인 'Victoria Shi'를 발표했으나 대외 홍보용에 불과했다.

디엘라와 달리 이들은 모두 자문이나 홍보 기능만 담당했을 뿐 직접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없었다. 이 때문에 알바니아 사례가 AI 거버넌스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전문가 진단과 향후 전망

AI 거버넌스 전문가들은 알바니아의 시도를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 아일랜드 시민자유위원회 기술연구원 크리스 슈리샥은 "AI가 어떤 메시지를 우선시할지 결정하는 방식이 공개돼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제 AI 정책 전문가들은 "부패가 심각한 국가에서 AI를 통한 투명성 확보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인간 감독과 안전장치 없이는 또 다른 형태의 조작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AI 알고리즘 자체가 편향되거나 해킹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정치권과 시민사회 반응

알바니아 내부에서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 지지층은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며 환영하는 반면, 야당과 시민단체는 "정치적 쇼"라며 비판적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알바니아에서는 AI조차 부패할 것"이라는 냉소적 반응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층과 IT 업계는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알바니아 IT협회는 "글로벌 기술 선도국으로 발돋움할 기회"라며 지지 입장을 밝혔다.

향후 디엘라의 성공 여부는 투명한 감독 체계 구축과 측정 가능한 성과 창출에 달려있다. 알바니아 정부는 AI 감사 시스템과 책임 프레임워크 도입을 예고했지만 구체적 방안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실험이 AI 거버넌스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