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hasm Catalyst
“이제 대출에는 예외가 없다.”
실수요자부터 갭투자자, 전세 세입자까지—정부의 전방위 DSR 규제는 가계부채라는 구조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고강도 처방’이지만, 그 부작용은 서민들의 주거 현실을 급속히 냉각시키고 있다.
◆정부, 가계부채 80%대 목표… 전방위 DSR 규제 시동
정부가 주택도시기금의 디딤돌대출, 버팀목대출, 그리고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전세자금대출까지 포함해 사실상 모든 주택 관련 대출에 소득 기반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정책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는 가계부채 비율을 80%대로 낮추겠다는 국정과제 목표에 따른 조치다. 2025년 1분기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28조 원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현재의 부채 구조는 경제 전반에 시스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며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세자금·정책대출, '우회통로'에서 규제 대상으로
그동안 실수요자 보호 차원에서 DSR 규제에서 제외됐던 전세자금대출과 정책 모기지 대출은, 최근 전체 대출 증가의 우회 경로로 지목돼 왔다. 실제로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9년 105조 원에서 2024년 말 190조 원까지 증가했다. 보증기관인 주택금융공사 측은 “일부 전세대출이 갭투자에 악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고민이 깊어졌다”고 전했다.
◆스트레스 DSR 본격 시행… 소득 대비 대출 여력 더 줄어
7월부터 수도권을 시작으로 ‘3단계 스트레스 DSR’ 제도가 시행되면서 DSR 계산 시 금리에 1.5%포인트를 가산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이에 따라 연소득 1억 원의 차주는 30년 만기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4800만 원 감소하게 된다. 여기에 LTV(담보인정비율)까지 강화되며 대출 여력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실수요자 불만 고조… 생애최초 구입자·세입자 ‘직격탄’
정책의 일차적 충격은 생애최초 주택 구매자와 전세 세입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연소득 5천만 원의 생애최초 구매자가 수도권에서 6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할 경우, LTV 70% 기준 대출은 4억 2천만 원 수준이지만, 스트레스 DSR이 적용되면 실질 한도는 3억 원 미만으로 축소된다.
전세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7월부터 전세자금대출 보증비율을 100%에서 80%로 낮췄고, 여기에 DSR이 적용되면 차주가 마련해야 할 자기자금 비율은 더욱 늘어난다. 주택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전세금 마련이 어려워지면 월세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동산 시장, 급속 냉각… 풍선효과 우려도 제기
6월 27일 발표된 부동산 대책과 함께 DSR 규제가 맞물리면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반토막 이상 감소했다. 규제가 집중된 수도권에서 다주택자와 갭투자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영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규제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우려한다. 실제로 충청·강원권 오피스텔 매매가와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KB금융지주 강민석 박사는 “중저가·비규제 지역에서 새로운 투기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대출 심사 체계 전면 재정비
은행 등 금융기관도 분주하다. 정책대출에 DSR이 적용되면 소득 증빙 강화, 신용평가 모델 정비, 위험가중치 상승에 따른 자본 적립 확대 등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주택담보대출의 자본 위험가중치를 15%에서 25%로 상향 조정해, 사실상 부동산 담보 대출을 ‘덜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정부는 고정금리 대출에 대한 예대율 완화도 추진 중이다. 이는 금리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은행이 일정 부분 부담하도록 유도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규제는 필요하지만 실수요 대책 동반돼야”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이번 규제 조치가 가계부채 총량 억제와 금융안정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및 연구기관들은 실수요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공급 부족 문제와 겹칠 경우,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며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제안했다. 또한 세입자 보호를 위한 전세금 반환보증 확대, 공공임대 공급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결론: 규제, 단기 대응 아닌 장기 전략 필요
정부의 이번 조치는 단기적 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긴급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의 효과를 지속하려면 단순한 대출 규제를 넘어 공급 구조 개혁과 취약계층 보호, 금융 시스템 전환 등 포괄적인 장기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규제가 시장의 기대와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면 신뢰를 잃고, 결국 정책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유연하면서도 일관된 규제’이며, 실수요자를 보호하면서도 전체 금융 건전성을 강화하는 정밀 조정형 정책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