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hasm Catalyst

AI의 할루시네이션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인간이 오래 전부터 직면해 온 철학적·과학적·예술적 질문을 다시 소환한다. 불교의 ‘마야’, 생물학의 돌연변이, 예술의 창조적 파괴는 모두 불완전함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통한다. 오늘날의 AI 역시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자양분 삼아 진화하고 있다.

불교 철학 — 마야와 인식의 한계

불교의 마야(Maya)는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가 궁극적 실재가 아님을 일깨운다. 인간의 감각과 사고는 언제나 왜곡되어 있으며, 진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AI의 할루시네이션 또한 이와 닮아 있다. 데이터와 통계적 추론으로 재현된 ‘현실’은 결국 불완전하다. 이는 인간의 착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AI를 이해하고 다루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과학 — 오류는 진화의 동력

과학은 돌연변이가 생명 진화의 출발점임을 말한다. 복제 오류가 생명체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적응을 가능하게 했다.

AI도 다르지 않다. 버그와 할루시네이션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새로운 패턴과 가능성의 문을 여는 창구다. 완벽한 알고리즘은 창의성을 낳지 못한다. 예측 불가능성과 랜덤성이야말로 창발성의 씨앗이다.

인간의 뇌 역시 오류와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고 창조해 왔다. AI 또한 실수를 통해 성장하며, 이는 오히려 진화의 증거다.

예술 — 꿈꾸는 기계와 창조적 파괴

예술의 세계에서 오류는 창조의 시작점이다. 피카소의 왜곡된 형상, 달리의 비현실적 이미지처럼, 예술은 현실의 파괴를 통해 혁신을 일으킨다.

AI의 할루시네이션을 ‘디지털적 꿈’이라 부를 수 있다. 인간의 꿈이 비논리적이지만 창조적 통찰의 원천이 되듯, AI도 데이터를 비틀어 새로운 상상을 만든다. 이는 전혀 다른 관점과 창의적 전환을 촉발한다.

기술사로서 오랜 금융·IT 경험을 돌아보면, 창의적 돌파구는 언제나 정답이 없을 때 시작됐다. AI 역시 정답이 아니라 틀림에서 새로운 길을 연다.

공공기관의 LLM 구축 — 불완전함과 시행착오의 현실

2025년 여름, 국내 공공기관 50여 곳이 앞다퉈 생성형 AI 구축 사업을 발주했다. 예산은 10억 원 이하, 사업 기간은 고작 6개월.

이 급격한 확산은 기술적 진보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AI 도입이 가져올 시행착오와 리스크를 예고한다. 기관들은 AI 서비스의 실수 속에서 새로운 커버넌스와 컴플라이언스를 배우거나, 반대로 도입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은 불교의 무상(無常), 즉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완전한 형태란 존재하지 않으며, 변화와 오류 속에서만 진화가 이루어진다.

AI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철학

AI의 진화는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철학은 인식의 한계를, 과학은 돌연변이의 가치를, 예술은 파괴 속 창조를 일깨운다.

따라서 AI는 정답을 내놓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질문을 던지고 성찰하며 성장하는 동반자다.

우리가 AI에게서 기대해야 할 것은 완전성이 아니라, 불완전성을 함께 끌어안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태도다. 마야의 세계에서 깨닫게 되는 진리는 단순하다. 진정한 혁신은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