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hasm Catalyst

미국은 AI 도입을 선택이 아닌 의무로 규정하며 정치적 신호, 신속한 예산·조달 혁신, 안전을 보장하는 거버넌스, 그리고 개방형 기술 인프라라는 네 축을 바탕으로 공공부문 AI 혁신을 가속화했다. 이 구조적 속도전은 규제를 단순 완화한 것이 아니라 표준화된 절차와 인증 체계 위에서 추진됐다는 점에서 한국에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 정치적 리더십의 강력한 신호

미국 연방정부는 2025년 1월 「미국의 AI 리더십을 가로막는 장벽 제거」 행정명령을 통해 “AI를 활용해도 된다”가 아니라 “AI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이어 4월 발표된 OMB 지침(M-25-21)은 전 부처에 AI 활용·거버넌스·신뢰 구축을 즉시 집행할 의무로 명문화했다. 같은 해 7월 공개된 ‘AI Action Plan(AAP)’은 혁신 가속, 인프라 구축, 국제 협력이라는 세 축을 통해 국가 차원의 추진 속도를 높였다. 이 신호는 각 부처 최고 AI 책임자(CAIO) 제도를 강화하고 현장의 주저를 제거하는 효과를 냈다.

◆ 예산과 조달 혁신, ‘빨리·작게·크게’

미국이 공공 AI 혁신을 민간보다 뒤처지지 않게 추진할 수 있었던 직접 동력은 예산과 조달 제도의 혁신이었다. OMB M-25-22는 AI 조달 표준을 새롭게 규정하며 위험 관리, 성능 기준, 데이터 권리, 보안 요건을 명확히 했다. 이를 통해 기관들은 파일럿을 빠르게 착수하고 성공 시 확장 계약으로 이어가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조달청(GSA)은 생성형 AI 조달 가이드와 전용 포털을 마련해 평가 기준과 절차 템플릿을 제공했으며, 정부공통 계약차로(GWAC)는 미리 심사된 기업을 통해 빠른 발주를 가능하게 했다. 국방부 역시 OT(Other Transaction) 계약과 다중 CSP 접근이 가능한 JWCC 계약으로 실증에서 확산까지 속도를 높였다. 또한 기술현대화기금(TMF)은 성과 기반 분할 집행 방식을 통해 실패 위험을 낮추고, 초기 시드머니 방식으로 각 부처가 빠르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이 점을 한국과 대비하며 강조한다. 서울 소재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한국은 대규모 시스템 사업이 예타·ISP 절차에 묶여 수년간 지연되지만, 미국은 TMF와 같은 장치를 통해 먼저 시작하고 성과에 따라 확대한다”며 “이런 자금 메커니즘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안전망을 제공하는 거버넌스와 신뢰 체계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안전을 희생하지 않았다. NIST가 제시한 AI 위험관리 프레임워크(AI RMF 1.0)는 기관과 기업이 동일한 리스크 언어로 평가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24년 발표된 생성형 AI 프로파일(NIST AI 600-1)은 환각, 정보 무결성, 권리 침해 등 대규모 언어모델 특유의 위험에 대응책을 제시했다. 또한 FedRAMP 현대화를 통해 보안 인증을 자동화·재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클라우드 승인 절차의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 점에 주목한다. 미시간대 정책대학의 AI 거버넌스 연구자는 “미국은 단순히 규제를 풀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평가와 인증이라는 견고한 틀 위에서 속도를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 공공 클라우드 인프라, 개방형으로 확장

미국은 클라우드 인프라를 조기 규격화하며 최신 AI 모델을 정부 전용 영역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Azure Government, Google Vertex AI, AWS Bedrock 등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는 FedRAMP High 인증을 확보해 정부 기관이 보안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LLM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반면 한국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폐쇄형 PPP존 구조로 인해 민간 CSP 참여와 오토스케일링이 제한되어 있다. 이에 따라 공공 분야에서 대규모 언어모델을 도입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JWCC처럼 다수 CSP를 통한 개방형 계약차로 모델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시사점: 속도와 안전을 동시에 확보

미국 사례가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정치적 리더십이 방향을 제시하고, 예산·조달 혁신이 추진력을 제공했으며, 거버넌스가 안전망을, 인프라가 활주로를 제공했다. 네 축이 맞물리며 민간의 기술을 공공업무에 적시에 투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무작정 속도를 높인 것이 아니라 표준화된 절차와 인증·평가를 기반으로 한 속도전이었다는 사실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 교수는 “한국도 대규모 사업 절차가 길어지면 혁신 타이밍을 놓친다”며 “미국처럼 표준화와 평가 틀을 갖춘 상태에서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