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hasm Catalyst
윤석열 정부에서 대폭 삭감됐던 국가 연구개발(R&D) 투자가 이재명 정부 들어 역대 최대 규모로 복원됐다. 단순한 예산 확대를 넘어 인공지능(AI), 에너지, 전략기술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재설계하는 구상이다. 다만 대규모 예산이 다시 부처별 분산과 비효율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역대 최대 R&D 예산 확정
정부는 22일 대통령 주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2026년도 국가 R&D 예산을 35조3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이는 올해보다 19.3%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재명 정부 첫 R&D 예산안은 ‘기술주도 성장’과 ‘모두의 성장’을 양대 기조로 삼았다. 연구 생태계 복원과 동시에 미래 산업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 AI 분야 106% 증가…‘AI 기본사회’ 전환 가속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인 분야는 AI다. 내년도 예산은 전년 대비 106.1% 늘어난 2조3000억원이 책정됐다. 범용인공지능(AGI), 저전력·경량형 AI, 물리적 환경에서 구현 가능한 ‘피지컬 AI’까지 포함해 독자적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 동시에 GPU 자원 공유 체계와 국산 NPU(신경망처리장치) 개발 등 인프라 강화에도 투자한다.
정부는 단순한 연구 지원을 넘어 행정, 보건, 국방 등 공공 영역에 AI를 확산시켜 ‘AI 기본사회’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은 “세계적 수준의 독자적인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과 글로벌 보편성을 갖춘 특화 AI 확산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에너지·전략기술에도 대규모 투자
에너지 분야에는 2조6000억원이 배정됐다. 초고효율 태양전지, 초대형 풍력발전,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꾀한다. AI 활용으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비해 전력 시스템 고도화도 추진된다.
전략기술 분야에는 8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양자컴퓨팅과 합성생물학 같은 원천기술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등 상용화 기술까지 포함된다. 방위산업에는 3조9000억원이 배정돼 K9 자주포 성능 고도화와 신기술 접목을 통한 전략 수출산업 육성을 뒷받침한다.
◆ 중소벤처·기초과학 지원 확대
중소벤처 분야에도 3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이는 전년 대비 39.3% 증가한 규모다. 민간투자 연계형 R&D와 경쟁보육형 R&D를 지원하고,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의 축적된 기술을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연계한다. 이를 통해 수출과 안보, 산업 생태계를 포괄하는 다층적 성장동력 확보를 노린다.
기초과학 지원도 확대한다. 학계에서는 “붕괴된 기초과학 생태계의 복원 여부가 이번 예산안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인권 부산대 교수는 “현장을 떠난 연구인력이 돌아오도록 기초연구에 특화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 “운영의 묘 필요”
전문가들은 환영과 함께 우려를 동시에 내놨다. 구본경 IBS 유전체연구단장은 “AI와 재생에너지 동시 투자 전략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글로벌 인재 유치 전략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예산 확대가 곧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술 사업화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대학·연구소 기반 딥테크 창업 인센티브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교육 교부금 중 일부를 대학 투자로 돌려 연구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종합 전망
이번 예산안은 윤석열 정부에서 축소됐던 R&D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AI와 에너지 등 미래 전략 분야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러나 부처 간 중복과 성과주의식 연구 편중을 막지 못한다면 ‘재설계’의 성과는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