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죽은 친구 묻었다”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유해 시범 발굴 착수

- 선감학원, 아동ㆍ청소년 강제 격리 수용…강제노역에 고문까지
- 한국전쟁 이후 국내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해 이뤄지는 첫 대규모 시굴
- 진실화해위, 진실 규명 후 경기도에 전면적인 발굴 권고할 계획

메이커스저널 승인 2022.10.02 15:45 의견 0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유해 발굴 작업이 실시된 26일 경기 안산시 대부도 선감동 유해 매장지에서 관계자들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감금, 학대 등 인권 유린이 자행된 선감학원 피해자에 대한 유해 시범 발굴을 착수했다.

진실화해위는 2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의 유해 매장지에서 개토제(開土祭)를 열고 시굴 현장을 공개했다. 이번 유해 시굴은 공공·민간을 통틀어 한국전쟁 이후 벌어진 국내 인권 침해에 대해 이뤄지는 첫 대규모 시굴로서 의의를 가진다.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선감학원

선감학원은 조선총독부가 1942년 태평양전쟁의 전사를 확보한다는 구실로 설립한 부랑아 감화시설로, 해방 이후에도 폐원되지 않고 부랑아 갱생·교육 등을 명분으로 1982년까지 아동과 청소년을 강제로 연행해 감금했다. 기록상으로 선감학원에 수용된 인원은 최소 4천 691명으로, 수용 아동의 85.3%는 13세 이하로 밝혀졌다.

피해자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거나 폭력과 고문 등 인권침해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중 다수는 구타와 영양실조로 사망하거나 선감도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바다에 빠져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공식 기록에는 24명의 사망자만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피해 생존자들은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하고 있어 이 차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선감학원 유해 매장 추정지에 마련된 제사상에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절을 올리며 추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감학원의 비극

김영배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대표는 이날 진행된 개토제에서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혹독한 강제노동에 동원됐고, 배고픔과 괴로움 등에 못 이겨 탈출을 시도하다 죽은 뒤에는 적법한 절차 없이 암매장당했다.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은 어린 원혼들께 머리 숙여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추도했다.

소설가 김훈 역시 “2010년부터 선감도에 있는 경기창작센터에서 글을 썼으며, 마을 원로 주민들로부터 뒤늦게 선감학원의 비극을 알게 됐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글을 썼다는 사실이 정말 견딜 수 없이 송구스러웠다”며 “과거의 악과 화해하는 것은 오직 사실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번 개토식에서 많은 사실이 확인돼 화해의 단추가 잡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2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선감학원 관련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관계자들이 개토제를 마친 후 시굴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감학원 인권 유린 피해 생존자 안영화(70) 씨는 “죽은 동료를 직접 묻기도 한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고 말혔다. 진실화해위 역시 “선감학원은 사망한 아동들의 시신을 수감 아동이 직접 묻게 했다”는 말을 전했으며, “유해가 땅 밑 얕은 곳에 묻힌 것으로 추정돼 작업은 포크레인 등의 중장비 대신 손호미 등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우종윤 유해 매장 추정지 시굴 조사단장은 봉분 한 기의 절반을 먼저 파내 단면을 살피며 “인위적으로 땅을 판 흔적이 발견돼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이곳 토양이 주변 지층과 구성 등이 다르다는 게 확인됐다”며 피해자 시신이 암매장된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달 30일까지 진행되는 시굴은 전체 매장 추정지의 약 10%에 해당하는 면적(900㎡)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시범 발굴’이다. 피해 생존자 190여 명이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고, 이들 중 다수는 이날 시굴이 시작된 장소를 암매장지로 지목했다. 이곳에는 유해 150여 구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는 시범 발굴이 착수된 지 하루가 지난 27일, 유해 매장지에서 치아 10여개와 단추 4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그 결과를 반영해 다음 달 진실 규명을 결정하고서 경기도에 전면적인 발굴을 권고할 계획이다.

동경민, 안채원, 양혜원 기자 (에디터 서포터즈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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