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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연구개발(R&D) 예산 편성을 둘러싼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기획재정부 간의 권한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 정부가 과학기술 행정체계 개편을 추진하면서, 혁신본부가 기존의 예산조정권을 넘어 예산편성권까지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예산편성권 독점하는 기재부…과학기술계의 오랜 불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 예산편성권은 대부분 기획재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기재부 예산실장은 정부 내 핵심 요직으로, 이 자리를 거친 인사들이 장관급으로 승진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모피아’라는 비판적 시선이 존재하며,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는 기재부의 권한 집중에 대한 불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기획재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예산편성 기능을 국민의 손으로 되돌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과학기술계의 오랜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특히 과학기술혁신본부가 R&D 예산편성권을 온전히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학기술인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역할과 한계

과학기술혁신본부는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과학기술부 산하에 신설된 조직으로, 범부처적 R&D 예산 조정 기능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예산편성의 실질적 권한은 여전히 기재부가 쥐고 있어, 혁신본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오세정 전 의원은 과기정통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기재부로부터 연구개발 예산편성권을 빼앗아 올 자신이 있느냐”고 질의한 바 있으며, 이는 과학기술계의 절박한 요구를 대변하는 발언으로 평가된다.

새 정부의 개편 움직임…혁신본부의 시험대

2025년 들어 새 정부는 국정 철학을 반영한 R&D 예산 편성을 위해 혁신본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기재부가 설정한 30조 원 수준의 R&D 지출한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혁신본부가 지출한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예산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따라 혁신본부는 주요 R&D 예산안을 다시 짜고 있으며, 8월 중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재의결을 거쳐 기재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예산 편성 일정상 기재부의 심사 시간이 부족한 만큼, 사실상 혁신본부 주도로 예산이 편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 진단: “예산편성권 확보는 시스템 정비가 전제돼야”

염한웅 KAIST 교수는 “예산편성권을 혁신본부에 이관하는 것은 단순한 권한 이전이 아니라, 과학기술 거버넌스 전반의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산 배분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성훈 전 과학기술정책자문위원은 “예산편성권을 확보한 이후에도 각 부처와의 협력, 평가 시스템, 장기 전략 수립 등 복합적인 과제가 뒤따른다”며 “혁신본부의 역량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와 비교: 미국의 의회 중심 예산편성

한편 미국은 예산편성권이 의회에 있으며, 행정부는 예산안을 제안하는 역할에 그친다. 이는 예산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구조로, 한국에서도 기재부 중심의 예산편성 체계를 분산시키는 방안으로 자주 언급된다. 과거에는 기획예산처와 재무부로 분리 운영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는 기재부가 통합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향후 과제: 과학기술부총리제 부활과 조직 재편 논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자는 주장은 과학기술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는 혁신본부의 위상을 높이고, 범부처적 조정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평가된다. 또한 과기정통부를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로 분리하자는 주장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결론: 과학기술계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

예산편성권 이관은 단순한 행정 개편을 넘어,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성과 효율성을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다. 과학기술인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가 정책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할 시점이다.

혁신본부의 예산편성권 확보는 그 자체로 중요한 전환점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운영적 기반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과학기술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