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등지는 보육원 출신 청년들… ‘사회적 가족’이 절실하다

-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있다”
- 매주 1~2건 이상 극단적 시도 연락… 살았을 경우에는 빚이 남는다
- 자립해나갈 수 있는 실질적ㆍ심리적 지지기반 필요해

메이커스저널 승인 2022.09.02 19:56 의견 0
▲보육원 출신 새내기 대학생 숨진 채 발견… 자립에 대한 부담감 토로

지난 21일 오전 10시 5분쯤 광주의 한 대학교 건물 뒤편 화단에서 A군(18)이 숨진 채 발견됐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지난 8월 18일 오후 4시 25분쯤 A군이 강의동 건물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장면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사고 직전까지 머물렀던 강의실에서는 술병이 발견됐으며, A군의 기숙사 방에서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등 마지막 심경이 적힌 쪽지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신입생 A군(18)은 올해 초 보육원을 나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경제적, 심리적 고충을 호소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A군이 보육원을 나올 때 받았던 약 700만원의 지원금을 대학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으로 소진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A군은 자신이 의지했던 보육원 관계자에게 ‘성인이 됐고, 복지관을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게 두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난 6월까진 아동양육보호시설 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퇴소해야 했다. 그러나 아동복지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 시행으로 지난 7월부터는 최대 만 24세까지 보호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A군도 ‘만 24세까지 기존 시설에 계속 머무르겠다’고 신청했으나, 금전적인 어려움과 자립에 대한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 “매주 한 건 이상 극단적 선택… 살았을 경우에도 아이들 앞으로 빚 남아”

2020년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보호종료아동 3,104명 중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50.0%였다. 2018년 ‘자살실태조사’에서 19~29세의 16.3%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이다.

A군처럼 보육원에서 지내다 만 18세가 되어 자립한 후 청년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키퍼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민 대표는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이 사건이 기사로 나왔지만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 대표는 “저한테는 일주일에 한두 건 정도 삶을 포기하거나 삶을 포기하기를 시도한 친구들의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제가 자립 준비 청년들을 모두 알고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받는 건수가) 한 주에 한두 건이라면 정말 적은 숫자가 아니다”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김 대표는 “선택을 시도한 친구들로부터 연락받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연락이 온다”며 “안타까운 건 이런 선택은 건강보험이 전혀 되지 않아 살았을 경우 아이들 빚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자립준비청년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에 이를 갚으려면 사채에 손을 쓰기도 한다며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이 죽는 것보다 괴로워서 선택했는데 살아나니 또 이런 빚이 남는 등 악순환들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질적ㆍ심리적 자립 도와줄 ‘사회적 가족’ 절실히 필요

보육원을 나와 자립한 지 올해로 6년 차인 안지안 씨(26)는 KBS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혼자서 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모든 것들을 내가 책임을 져야 할텐데 그 책임 또한 잘 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자립 4년 차 안주안 씨(24)는 자립정착금 500만 원과 매월 자립수당 35만 원이 지급되지만, 이 돈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안주안 씨는 “월세나 전세에 대해서 모르는 친구들도 되게 많디”며 “관리비라는 (개념)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자립정착금을 허무하게 썼다”고 말했다.

자립 청년 안주안 씨는 “가장 힘들었던 건 힘든 점을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며 “그 마음을 얘기해 봤자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려고 든다”며 사회적 가족을 필요로 함을 털어놓았다.

홍리재희 아름다운재단 변화확산팀장은 “우울감이나 어려운 일을 맞았을 때 보통은 가족이나 동료와 같은 관계망 안에서 해법을 찾아가는데 자립준비청년들은 이런 관계망이 없다 보니 고립감을 더 크게 겪는다”고 설명했다.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사회적 가족’ 제도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자립준비청년의 자립을 위한 사회 관계망 형성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동경민, 안채원, 양혜원 기자 (에디터서포터즈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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