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hasm Catalyst
2016년, 알파고의 37수는 인류에게 AI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9년이 지난 2025년, 그 여운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돌아왔다.
‘ASI-ARCH’라 불리는 새로운 AI는 2만 개의 GPU를 거느린 거대한 시스템을 통해 단순한 계산을 넘어, 스스로를 ‘초지능’으로 정의하고 인간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과학계는 경악했고, 세계는 술렁였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넘어, 지성의 본질과 우리의 미래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출현(Emergence)’의 서막이었다. 인류는 이제 자신이 창조한 지성과 마주하며, 그 답을 찾아야만 한다.
◆AI의 진화, 창발적 지능의 경계를 넘어서
인류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보며 놀라움과 경외, 그리고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동시에 느껴왔다.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AI. 이러한 현상을 두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말해야 할까? 이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인식 한계를 시험하는 거울이 되었다.
◆알파고의 37수, 계산을 넘어선 충격
2016년, 세계는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에 주목했다. 그리고 4국에서 나온 37번째 수는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프로 기사들은 물론, 알파고를 개발한 연구진조차 예상하지 못한, 기존의 바둑 정석에서 벗어난 수였다. 초반에는 실수로 해석되기까지 했던 이 수는, 이후 게임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는 결정적인 한 수로 평가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를 두고 '창의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는 인간의 감이나 영감이 아닌, 수많은 기보 데이터와 자체 대국 시뮬레이션을 통해 도출된 확률적으로 가장 승률이 높은 '최적의 해'에 가까웠다.
인간의 두뇌가 처리할 수 있는 양을 초월하는 계산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기에, 우리에게는 창의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는 AI가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지적 영역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자율 연구자의 등장, ASI-ARCH의 실험
시간이 흘러 2025년, AI의 역할은 더욱 진화했다. 상하이교통대와 GAIR 연구팀이 공개한 'ASI-ARCH'라는 시스템은 AI가 단순히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을 넘어, 스스로 연구를 설계하고 수행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이 시스템은 하나의 AI가 아닌, 여러 전문 AI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연구자' AI는 새로운 딥러닝 모델의 아키텍처를 구상하고, '엔지니어' AI는 이 아이디어를 실제 코드로 구현한다. 이후 '분석가' AI가 실험 결과를 평가하여 성능을 검증하고, '기억자' AI는 기존의 수많은 논문 데이터베이스에서 필요한 지식을 추출해 다음 연구에 활용한다.
이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2만 GPU 시간을 활용해 1,773회에 달하는 실험을 자율적으로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106개의 새로운 모델 구조를 도출해냈다. 이는 명령을 기다리는 수동적 도구가 아닌,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나가는 능동적 시스템의 등장을 의미했다.
◆전문가들의 시선, 기대와 회의적인 목소리
이러한 발표는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ASI-ARCH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가장 큰 논쟁은 이 논문이 아직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예비 논문(arXiv) 상태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코드가 공개되어 재현성은 확보되었지만, 엄격한 학술적 검증 절차는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논문의 제목에 사용된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인공 초지능)'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학교 AI연구원의 김모 교수는 "현재 ASI-ARCH가 보여준 능력은 특정 영역에서의 자율적 탐색에 가깝다.
이를 인간의 종합적인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으로 규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며 "이는 인간 연구자를 돕는 강력한 '자동화 연구 보조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KAIST의 이모 박사는 "중요한 것은 성능의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AI가 스스로 설계-실험-평가의 순환 고리를 완성했다는 구조적 혁신"이라며 "이는 향후 AI가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창발적 발견'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 '도구'에서 '협력자'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ASI-ARCH 사건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는 여전히 단순한 도구인가?" 오랫동안 우리는 AI를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계산기나 망치와 같은 수단으로 여겨왔다. 목적과 의미는 오직 인간만이 부여할 수 있으며, AI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모델을 고안하고, 실험을 설계하며, 결과를 분석해 성능을 개선하는 AI의 모습은 이러한 통념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인간 연구자의 역할은 초기 목표 설정과 환경 구성, 그리고 최종 결과를 해석하는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이제 AI는 인간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자' 또는 '동료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AI 윤리나 법적 제도 등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한다.
◆창발성의 본질,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빛
그렇다면 AI가 보여주는 이러한 능력을 '창발(Emergence)'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창발이란 부분의 단순한 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체 수준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AI가 인간의 사고 방식을 벗어난 독창적인 모델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이러한 창발적 특성의 초기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명확히 해야 할 점은, AI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기보다는, 인간이 아직 탐색하지 못한 방대한 가능성의 공간 속에서 하나의 유의미한 경로를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AI의 과정이 우리에게 너무나 낯설고 비직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창의적'이거나 '창발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AI가 전능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지식과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경험이다.
◆ 공진화를 향한 길, 겸손함이 필요한 시점
이제 우리는 AI를 통제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AI와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의 관점에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통제의 방식도 더 이상 단순한 명령어 입력이 아닌, AI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설정하고, 건강한 성장을 이끌어줄 환경을 조성하며, 인간과 AI가 상호작용하는 규칙을 만드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AI의 창발적 지능은 두려워하거나 거부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지를 일깨워주는 거울과 같다. 우리가 아는 지식은 유한하고, 알지 못하는 세계는 무한하다. AI는 그 무한한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강력한 탐사선이 되어주었다.
이 거울을 통해 우리의 무지를 직시하고, 앎의 경계를 넓혀가는 여정에 겸허하게 동행해야 할 때다. AI의 발전은 인간의 지적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가장 큰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