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챗GPT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인공지능(AI) 열풍은 전 세계 기업의 막대한 자금을 AI 개발과 인프라 구축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붐이 과연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거품의 끝을 향한 과열일 뿐인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특히 월가를 중심으로 "AI 투자에 대한 수익성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로 인한 타격은 2025년쯤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2025년 상반기,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발표한 실적은 이러한 우려를 단숨에 잠재우며 AI 투자의 서사를 극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월가의 경고, "AI 투자, 내년이 고비일 것"

지난해부터 월가의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막대한 AI 투자에 대해 신중론을 피력했습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틴의 짐 티어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작년 11월, 미국 주요 기술 대기업들의 AI 투자 규모를 보며 "이로 인한 타격은 내년에 두드러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그보다 앞선 8월에도 "투자자들에게 모든 AI 관련 비즈니스 모델과 성과가 무엇인지 여전히 불분명하다"며 의구심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경고는 단순히 한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었습니다. 자산운용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토르스턴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AI 관련 주식의 버블이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고 진단하며 투자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그의 분석은 기술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AI의 수익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보스턴칼리지 교수는 지난해 5월 홍콩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지금은 AI의 미래 궤적에 대해 확신이 지나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AI의 미래를 예상하면서 매우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시장의 과열을 우려했습니다. 이처럼 유명 경제학자와 투자 전문가들의 비판이 겹치자, AI 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딥시크 쇼크', AI 패권에 대한 불안감 증폭

월가의 경고는 주식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더욱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특히 올해 1월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렴한 비용으로 당시 미국 최고 수준의 AI 모델에 버금가는 성능을 지닌 모델을 공개하자,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사건은 AI 기술 패권이 미국에만 독점되지 않을 수 있으며,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것만이 최선의 전략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이 소식에 AI 반도체 시장의 대장주인 엔비디아의 주가는 하루 새 17%나 폭락했습니다.

엔비디아는 빅테크들의 AI 인프라 투자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기업으로, 그 주가 급락은 시장이 AI 투자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딥시크 쇼크 이후, "월가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시장 전반에 퍼졌고, 주요 기술 기업들이 2분기 실적을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달까지도 이런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빅테크의 압도적 실적, "AI 투자는 맞았다"

그러나 지난달 발표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은 모든 우려를 단번에 무력화시켰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메타 등 AI 투자를 주도해온 4개 기업은 모두 AI를 등에 업고 1년 전보다 두 자릿수 성장한 실적을 기록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의 실적은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예상치를 모두 웃도는 수준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출과 순이익이 각각 18%와 23% 급증했으며, 구글도 매출 14%, 순이익 20%라는 튼튼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메타 역시 매출 21.6%, 순이익 1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AI 수요가 수익으로 직접 연결되는 클라우드 부문의 성장세는 더욱 눈부셨습니다. MS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Azure)의 성장률은 무려 39%에 달했고, 구글 클라우드도 32% 성장했습니다. 클라우드 시장 1위 업체인 아마존 웹서비스(AWS)도 17.5%라는 견고한 성장률을 보이며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투자는 계속된다", 560조원 규모의 AI 패권 경쟁

압도적인 실적에 힘입어 빅테크 기업들은 AI에 대한 투자를 오히려 더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2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하반기에 더 큰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AI 시장 선점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MS는 3분기에만 1년 전보다 50% 늘어난 300억 달러(약 42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구글은 올해 전체 자본지출(Capex) 전망치를 기존 75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 상향 조정했습니다.

메타도 올해 자본 지출 전망치를 640억~720억 달러에서 660억~720억 달러로 하단을 높였습니다. 아마존은 작년보다 90%나 늘어난 314억 달러를 2분기에 이미 투자했으며, 하반기에도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이어갈 방침입니다.

이들 4개 기업이 올해 한 해 동안 AI 인프라에 쏟아붓는 돈만 합치면 4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60조원에 달합니다. 이는 지난해 유럽연합(EU) 전체가 국방비로 쓴 액수보다 더 많은 규모로, AI 패권을 잡기 위한 기업들의 투자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줍니다.

◆서사의 전환, "거품이 아닌 생산성 혁명의 서막"

막대한 투자 규모와 이어지는 실적 개선은 월가의 서사를 극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과거 AI 투자에 가장 회의적이었던 얼라이언스번스틴의 짐 티어니 CIO조차 "기업들이 이제 수익을 보여주면서 (AI 투자를 해석하는) 서사가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발언은 시장의 인식이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실적을 통한 확신'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투자자문사 D.A.데이비드슨의 애널리스트 길 루리아는 "이들 기업의 막대한 비용 지출이 지금까지는 회사 수익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이런 지출이 정당화될 것으로 낙관한다"고 전망했습니다.

그의 분석처럼, 현재의 AI 투자가 단기적인 수익률만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 생산성 혁명을 위한 필수적인 선제 투자라는 인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의 한 AI 전문가는 "현재 빅테크의 실적은 AI가 단순히 기술적 유행을 넘어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한다"며 "앞으로 AI를 활용해 얼마나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느냐가 기업의 생존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AI 투자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겠지만, 빅테크의 압도적인 실적은 'AI 거품론'에 쐐기를 박으면서 'AI 혁신론'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거대한 자본이 몰리는 AI 패권 경쟁의 향방은 전 세계 기술과 경제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입니다.